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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월~5월의 상담실이야기
    대한에이즈예방협회 2022/11/23 33

 

["만나고 싶었습니다"-요양병원에 입성한 어르신 이야기]

 

어느 날 갑자기 어르신이 몸이 편찮아지셨습니다. 어쩐지 몸살기가 있고, 혹시 코로나인가? 싶어서 병원을 갔다가 코로나가 의심이 된다는 이유로 입원하게 되었습니다. 병원에서 지내시는 중 낙상 사고를 당해 꼼짝도 할 수 없는 몸이 되어버렸습니다.

 

의사 선생님의 진단으로는 좌측의 대퇴부 골절이라 수술을 해야 하는 상황이라 했습니다. 그러나 수술을 하여도 완치의 가능성은 높지 않고, 수술을 하여도 걷는다는 보장이 없었습니다. 어르신은 막막한 상황에서 가족들에게 의논을 하려고 했지만 가족들은 어르신의 전화도 받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두려웠습니다. 막상 돈을 들여서 수술을 하였다 하더라도 걷지를 못한다면 그건 더 큰일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병원에서 수술하자는 말에 응할 수가 없었습니다.

 

HIV 감염된 이후, 가족은 어르신을 벌레보듯 하였다고 합니다. 오랜만에 자식의 집을 가면 손주 녀석 손도 한 번 못 잡아보고 마치 병균 덩어리인 것처럼, 어르신이 있는 자리에서 방석을 털고 빗자루를 들고 쓸어낼 기세여서 차라리 가족이 없다고 생각하자고 혼자 생활하셨던 기간이 길었습니다. 그렇지만 막상 힘든 일을 당하고 보니 가족의 지원이 필요하여 전화하였지만 묵묵부답인 가족에게 대한 원망의 말은 상담실 전화로도 하지 않았습니다. 

 

가족이 연락되지 않아 어르신은 병원에다 아무런 말도 못 하고 있었기에 병원에서는 상담실로 전화를 하여, 어르신의 수술 관련 상황을 알려주었습니다. 수술하려면 빨리해야 하는데 어르신이 묵묵부답이라 병원에서도 곤란하다고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몸을 생각하면 하루라도 빨리 수술을 잡아야 하는데, 병원의 마음과는 달리 어르신도 아무 말도 할 수 없는 것이 정말 난감한 상황이었습니다. 가족의 도움이 없다면 수술하고 난 뒤 그 비싼 간병비를 어떻게 부담하는가? 걱정하시길래, 대한에이즈예방협회에서 감염인 분이 입원하여 간병이 필요하다는 의료진의 신청서가 있으면 간병인을 1~2주간 무료로 지원해 드린다는 말을 드렸지만도 수술은 겁이 나는 일이었습니다.

 

수술해서 잘 된다는 보장도 없고, 더 잘못되면 어떡하시느냐던 어르신은 갑갑한 병원에서 퇴원하여 겨우 자신의 방으로 들어가셨습니다. 거기에서 주변의 이야기들을 듣고 의견을 구하셨습니다. 상담실에도 전화하셔서 어떻게 하느냐고 물으십니다. 상담실에서는 그래도 수술을 하고 완치를 기다려야 하지 않겠느냐고 말할 수밖에는 다른 도리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어르신에게 우연히 방문한 청년의 할머니 이야기는 달랐습니다. 그 청년의 할머니도 똑같은 상황이었는데 수술하지 않고 6개월 정도 누워서 견디니 나중에 걷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아무리 전화하고 하여도 가족은 연락이 안 되는 상황 속에서 수술 결정을 못 하던 당시, 이 청년의 말은 반가운 이야기가 되어서 어르신은 수술을 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수술해도 성공률이 낮은지라 어르신은 수술하는 대신 요양병원에 입원을 하시기로 하였습니다. 상담실에서 여러 번 방문과 통화 끝에 겨우 요양병원을 가시기로 결정하셨습니다. HIV 감염인은 요양병원에서 대개 거부하는 분에 속합니다. 타인에게 감염을 시키지 않는 것은 알지만 요양병원에서는 감염인이란 이유로 배척하지요. 왜냐고요? 감염인이 입원을 하면 소문이 나고 다른 분들이 꺼린다는 것이 이유입니다. 실제로 약을 드시는 감염인의 경우는 바이러스가 없으며 감염력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상업적으로 꺼린다는 것이 안타깝습니다. 그런데 어르신은 미리 상담실에서 연계가 된 요양원이 있어서 어렵지 않게 입원하셨습니다. 

 

건강할 때의 어르신은 늘 여기저기를 다니던 분이었습니다. 시내 서점에서 책도 읽으시고 이곳저곳을 다니시던 분이었던지라 요양병원에서 꼼짝 못 하고 침대 생활을 하시는 게 너무 갑갑하셨습니다. 갑자기 집에 있는 어떤 서류가 생각이 나고 그걸 가지고 와야 하는데~!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오만가지 생각이 머리에 지나가고 마음은 갑갑하고 견디기 어려웠습니다. 이런 심정을 전화기로 상담실로 전하시던 어르신은 어느 날 상담실로 전화하셔서 택시를 불러서 타고 내일 당장 상담실에 오시겠다는 것이었습니다. 걷지 못하는 몸으로 택시로 오시겠다는 그 마음이 너무나 간절히 전해져서 상담실에서 직접 방문을 하기로 하였습니다. 

 

이튿날 요양병원에서는 얼굴을 마주 보는 면회는 아직 안 되기에 난감해 하였습니다. 코로나가 완화는 되었으나 요양병원에서까지 완화가 된 것은 아니었기에 여러 차례 통화를 통해서 겨우 출입구에 비닐막을 치고 상담자로서 두 분을 만났습니다. 어르신은 휠체어에 몸을 의지한 채 나오셨습니다. 오랜만에 뵙는 그분의 얼굴을 생각보다 좋았습니다. 누워서 꼼짝 못 하시던 때와는 달리 휠체어에 앉기도 하시니, 시간이 많은 것을 해결해 주어 다행이구나! 하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그간 상담실에다 쏟아내던 어르신의 여러 가지 불평불만의 마음들이 눈 녹듯이 녹아내렸습니다. 상담을 하는 사람의 얼굴 한 번 보았을 뿐인데! 그 마음들이 다 눈 녹듯이 녹는 것이 신기하였습니다. 힘내라는 주먹손을 만들고 웃으며 함께 사진을 찍을 수 있어서 얼마나 다행이었는지요!

 

“이제 되었습니다. 이제 괜찮습니다. 얼굴 한 번 보고 나니 이제 마음이 안정됩니다. 만나고 싶었습니다!”

 

우리가 어렵고 힘들 때, 상담 관계처럼 신뢰 관계가 있는 사람의 얼굴을 한 번 보는 것이 얼마나 안심이 되는지… 사람의 마음 구조를 어르신을 통해 배우는 시간이었습니다. 어르신은 평소 말씀하시던 음료수도 더 이상 필요하지 않고, 아무것도 필요하지 않고 그저 나의 힘듦을 이해해 주는 사람의 얼굴을 한 번이라도 보고, 그가 하는 괜찮다는 말 한마디에 기운을 얻으신 것입니다. 평소 의심병이 있으신 어르신으로서는 상담실에서 요양병원으로 가서 말하니, 이제 요양병원의 말도 믿어지는 것입니다.

 

아픈 분들에게, 마음이 아픈 분들에게 신뢰 관계가 있는 사람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알게 되었습니다. 가끔 요양병원에도 가서 입원하신 분들을 만나야겠다고 생각하게 하는 날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