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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8월의 상담실 이야기 (2021)
    대한에이즈예방협회 2022/06/16 32

 

 

 


<어느 동생의 이야기>


며칠 전 오빠가 에이즈라는 사실을 언니가 말했다.
그 말을 하기 전에 언니는 자신의 남동생이 얼마나 신뢰로운 사람인지? 착한 사람인지? 그의 말을 믿어야 한다는 사실을 연거푸 내게 말했다. 그러고 난 뒤 오빠가 감염이 되었다는 사실을 털어놓았다.

엄마 없는 하늘 아래 큰언니는 오빠의 엄마노릇을 하느라 오빠 곁에서 병간호를 하던 중이었다. 처음에는 언니도 몰랐던 사실이었다. 우리 온가족은 내 바로 위 오빠가 뇌종양으로 병원에 입원한다는 것으로 알았고 살아만 나오기를 간절히 기도했다. 기도 덕인지 오빠는 살아나오기 어렵다는 수술을 견디고 건강을 회복해가고 있는 중이었던지라 나는 너무나 놀랐다.

점심 준비를 하려던 참이었는데 너무나 충격이 와서 식사를 할 수가 없었다. 그래도 억지로라도 먹어야지 하며 끓이던 라면도 그냥 개수대로 부어진다. 도저히 한 젓가락이 입으로 들이켜지지 않는다. 그냥 학원 가느라 늦장 부리는 꼬맹이 녀석만 혼내주고 있었다. 가슴이 타들어가고 입이 말랐다. 그런데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었다.
평소 나는 남편에게 내 모든 이야기들을 하였다. 그런데 이 이야기는 남편에게조차 말하기 어려웠다. 그가 오빠 때문에 나까지 이상하게 볼 것 같았다. 누구에게도 말하기 어려운 이야기를 내게 말하는 언니가 미워졌다. 나는 어쩌라고?

사실 에이즈는 내게는 익숙하지 않은 단어이다. 간호관련 공부를 할 당시에도 에이즈는 나와 거리가 멀다 싶어서 대충 지나간 수업이었다. 그런데 내가족이 그것도 나의 바로 위 오빠가 에이즈라니~! 믿기 어렵고 정신이 뺑그르르 돌아가고 있었다. 그간 그가 찬 나이임에도 결혼도 하지 않고 혼자 지낸 것도 생각이 나고, 우리 가족을 오래 떠나서 외국 생활을 한 기억도 새록이 올라온다. 혹시 그가 우리와 다른 성정체성일까?

마음은 더 답답하고 찬물을 들이켜도 가라앉지 않는다. 그가 동성애일 수 있다는 생각이 들자 나는 그를 만나러 병원으로 당장 달려가고 싶었다. 그리고 나름 친했던 내게 그 사실을 왜 말하지 않았는지? 물어보고 싶었다. 언니를 통해서 듣기로는 그는 그런 적 없다고 했다 한다. 그도 억울하다고 한다고 한다. 사실일거야! 그럴리가 없어! 내 마음은 아무도 걸지 않은 싸움을 혼자서 벌이고 있다. 밥맛도 없다. 아무 기운이 없다. 나는 망신창이가 되어가고 있다. 이곳저곳 검색하다 대한에이즈예방협회대구경북지회 상담실로 전화를 돌린다. 그리곤 전화로 상담일정을 잡았다.

그의 감염사실이다. 내 오빠의 이야기이다. 그가 감염되었다는 것이 왜 이리 힘드나? 그는 나와 같은 존재이니까 그러니까 더 힘들다. 그는 곧 나이니까. 에이즈 상담실에서 대화를 나누고 나니 나는 모든 사람이 남성 아니면 여성에 속한다고 믿고 있었던 것이다. 나같은 내 가족 오빠는 적어도 남성 아니면 여성으로 이성애자였어야 한다고 소리치고 있었던 나를 발견하였다.

그래 누구도 무엇도 될 수 있다. 두시간여 상담 끝에 나는 내 오빠가 동성애자이든 이성애자이든 트랜스젠더이든 양성애자이든 그 무엇이든 될 수 있었던 것임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오빠 뿐 아니라 내 주변의 모든 사람들 - 성정체성은 누구나 스스로 발견하고 찾는 것이다. 자연스럽게 그렇게 되는 것인데 거기에다가 도덕적이고 비도적적이고 되고 안되고 하는 판단의 말을 덧붙이는 것은 실례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누구나 자신이 에이즈에 걸리리라 생각하고 대비하지는 않는다. 그래서 막상 감염사실을 알게 되면 더 충격에 빠진다. 오빠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나보다 더 충격이었지 않았을까? 이제야 오빠의 마음이 느껴져 온다.

이제 내 오빠라곤 굳이 말하지 않아도 에이즈에 대해서 말하기로 한다. 비밀을 꼭꼭 가슴에 묻어둘 이유가 없다. 에이즈로 이제는 죽지 않는대! 에이즈는 콘돔없는 성관계로 누구나 걸릴 수도 있지만 이제 일상생활을 함께 하여도 안전한 질병이다. 에이즈에 걸린 사람은 약을 먹기에 바이러스가 0이고 안전하다. 그렇지 않은 에이즈에 대해서 모르는 사람들이 되려 불안할 수 있다. 검사를 하지 않았으면 자신이 감염인인지도 모르고 살기 때문이다. 그럴 경우 감염을 전파할 수 있으니까!

내일 시간을 내어 에이즈 검사도 해보아야겠다. 이번 주말에는 고생하는 언니와 오빠에게 좋아하는 빅핸즈카페 음료라도 사들고 방문을 해야겠다. 지난 주 한 주 매주 가던 병문안을 못가서 뭐라고 변명을 대지? 가벼워진 마음으로 딴생각을 하고 걷는다. 이미 마음이 많이 가벼워졌다. 오빠와 언니도 나처럼 편안하여지기를 바란다. 그렇지 않으면 다시 전화해서 가족 상담 예약을 해야지! 대한에이즈예방협회대구경북지회 상담실로!

여름 뙤약볕이 이제 다시 뜨겁게 느껴져 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