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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0월의 상담실이야기 (2021)
    대한에이즈예방협회 2022/06/16 30


 

 

[말 못하는 자의 말 _ 1. 나의 형]

나는 감염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두 다리로 걷기가 어려워져서 누워야 했습니다. 감염내과를 다니는 숱한 분들은 다 걸어서 다니던데 – 제게는 왜 이런 혹독한 시련이 왔는지?
그렇습니다. 저는 와상환자입니다.
울어봐도 속상해봐도 속절없이 몸은 무너져가고 마음도 따라 무너져갔습니다.
어쩔 수 없이 친형에게 그 사실을 알렸습니다. 그런데 형님은 저처럼 결혼하지 않은 싱글로 평생을 사셨기에 오랜만에 연락을 했음에도 달려와 주셨습니다. 고향 머나먼 곳에서 달려온 형님은 눈물로 내 두 손을 모아 잡으셨습니다.
“내가 도와줄게! 내게 힘이 되어줄게!”
부모님이 오래전에 돌아가셨지만 내 손을 잡아주겠다고 이 막내인 나에 대한 애정을 형님은
“우리 막둥이!”
라며 따스한 손의 온기로 전해주셨습니다. 그날부터 형님은 내 일상에 보호자로 등록이 되었습니다.
당시 나는 서울에서 요양병원에 입원하였습니다. 길거리에 널린 요양병원들은 내가 에이즈 환자라고 받아주지 않았지만 그 병원에서는 우리를 받아주었습니다. 감사하다 생각하며 입원한 그곳도 생활해 보니 힘들었습니다.
너무나 시설이 열악했고 우리 환자들을 보살핀다는 느낌보다는 방치한다는 느낌이 들 정도였습니다.
'우리가 빈 요양병원 침대를 채우는 존재에 그쳤구나!'
하는 서글픈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 결과 24시간 자리에 반듯이 누워있던 내게 욕창이 발생했습니다.
“오죽하면 욕창이 생기느냐고! 이럴 수는 없어요!”
하며 형님은 요양병원의 관계자들과 대판 싸움을 하고 나를 집이 가까운 대구의 모 요양병원으로 보내셨습니다. 형님도 이제는 나이가 들었습니다. 나를 대구로 이동하면서 연신 땀을 흘리는 것을 보니 형님이 얼마나 허약해졌는지를 알 수 있었습니다. 형님은 삐질삐질 땀이 흐르는 얼굴로 다시 내 손을 꼬옥 잡았습니다.
“이제 집에서 가까운 곳으로 가자! 마침 그곳에서도 우리 환자를 받아준다니 고마운 일이지! 나도 너를 만나러 오기도 쉽고!”
다시 그곳에서 새로운 생활이 시작되었습니다. 대구에 도착한 날은 그래도 행복했습니다. 서울에서 관련하시는 분들과 대구의 협회 분들이 함께 해 주었기 때문입니다. 그 날은 형님도 이리저리 바쁘게 움직이며 신이나 보였습니다.
막상 도착한 그곳은 규모도 더 적은 작은 곳이었습니다. 형님의 기대와는 달리 거기에서도 내 욕창은 줄어들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늘어났습니다. 그렇지만 다른 갈 곳이 없어서 로보트처럼 지냈습니다.
형님은 3달에 한번씩 내 약을 큰 병원에서 타오는 일을 하러 대구에 와서 나를 만나고 가셨습니다. 그럴 때마다 나는 형의 목소리가 분노로 커졌다간 체념으로 낮아지는 소리를 들어야 했습니다. 형의 한숨도 깊어져 갔습니다.
그런데 코로나가 밀려왔습니다. 어쩌는 수없이 우리는 다른 곳으로 이동이 되었습니다. 누워있던 나는 여러 병원을 거쳐서 결국은 급성기 병원에 입원을 하였습니다. 거기에서는 감염인 요양사업의 지원되지 않았습니다. 오롯이 기초생활수급자의 돈에다 간병비는 더 들어가야 하는 상황이었습니다. 수급금액을 넘어서는 돈은 형과 누나가 부담을 하였습니다.
거기에서도 공동간병으로 있었는데 – 내 욕창은 커져만 갔습니다. 내 몸은 시간마다 돌려줘야 하는 몸인데 그럴 형편이 아니었습니다. 나는 힘들고 괴로운 몸을 그분들이 두는 대로 있을 수 밖에 없었습니다. 욕창 관련 물품은 늘어났지만 나의 욕창은 줄어들지 않고 점점 커져만 갔습니다.
이제 형은 건강이 악화되었습니다. 나를 들여다보는 얼굴에 땀은 더 늘어나고 걸음걸이도 내 귀에 약해지고 있었습니다. 나를 들여다보는 눈이 촉촉해지며 형은 한참이나 나의 손을 잡고 놓지 않았습니다. 쒝쒝거리는 소리를 내며 형이 감염내과에서 내 약을 받아서 입원한 이 곳으로 오곤 했는데 이제는 그조차도 할 수 없는지? 형은 나타나지 않고 개인 간병인을 통해서 왔다며 약이 내게 도달하였습니다.
형이 병원에 가서 내 배꼽으로 식사가 들어오는 관을 교체하곤 했는데 – 요즘음은 형이 오지 않습니다. 형이 무슨 일이 있는지? 형이 괜찮은 건지?
나는 물을 수도 없습니다. 나는 소리를 못 내고 몸도 못돌리는 와상환자이기 때문입니다. 아마 아파도 너무 아파서 형이 어떻게 되었나 봅니다. 형이 나를 책임지고 돕기로 했는데 그러지 못하는 걸 보면 일이 생겨도 큰일이 생겼나 봅니다.
이제 간병을 하는 분도 누나 이야기를 합니다. 언제부턴가 대화 속에서 형님이 사라져버렸고, 아무도 형님의 이야기를 하지 않습니다. 얼마 전 간병인끼리의 들려오는 소리에 형이 돌아가셨다고 합니다. 아마 눈 감고 있는 내가 자는 줄 알았나 봅니다.
나의 형, 나 때문에 고생만 하던 형,
형이 몸이 안좋은 줄은 알았지만 나 먼저 그렇게 갈 줄은 몰랐습니다. 며칠이고 밤마다 형에 대한 생각으로 눈물이 흐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