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뮤니티

에이즈에 대한 잘못된 상식과 올바른 정보를 제공합니다.

공지사항
커뮤니티공지사항
  • 11월의 상담실 이야기
    대한에이즈예방협회 2022/02/15 23

 

[말 못하는 자의 말 _ 2. 나와 간병인]

 

나는 입으로 말할 수 없는 와상환자입니다.

배로 음식물을 먹습니다.

내 배와 음식을 연결하는 관은 6개월에 한 번씩 병원에 입원해서 교체합니다.

6개월마다 교체해야 하는데 어언 1년이 다 되어가도 교체를 못하고 있던 중, 큰 병원에 가서 관을 교체하고 오라는 지금 병원의 말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형이 돌아가시고 나를 책임진 누나는 너무 멀리 살고 몸도 안 좋아서 나를 데리고 큰 병원으로 가지 못합니다.

그래서 나를 데리고 갈 간병인을 구해야 합니다. 근데 간호사들이 간병인을 구하지 못했다고 말합니다.

나를 데리고 병원에 갈 사람을 구하지 못해서 난리가 났나 봅니다. 오매불망 기다리던 중 오늘 겨우 누군가가 왔습니다.

 

새로운 간병인입니다.

새로운 간병인은 나를 빤히 쳐다보더니 침대 위쪽의 이름을 번갈아 봅니다. 잠시 지나고 나를 내려다보는 그의 눈에 눈물이 어립니다.

언젠가 나도 그를 본 적이 있는 걸까요? 그는 나를 마치 아는 듯이 느껴졌습니다. 나도 저 눈매가 언젠가 만난 적이 있는 것 같습니다.

누굴까? 누굴까?

“옛날에 요양병원에서 같이 있었지? 나를 몰라보네~!”

자다가 깨다가 하는데 그의 목소리가 들렸습니다.

그 소리를 듣고 보니 앗, 기억이 납니다.

 

과거 경기도 요양병원에서 에이즈 관련 질환으로 나와 같이 입원해 있던 친구입니다. 그런데 그는 건강해져 있습니다. 건강한 몸으로 나를 간병하러 온 것입니다.

그는 점점 좋아져서 침대에서 일어나 걸어서 퇴원했나 봅니다.

여기 나는 그대로 쭈욱 누워 있게 되었고요. 이제 몸무게도 35kg!

뼈가 시리다고 생각했던 욕창은 들리는 소리에 의하면 20cm 랍니다.

누나랑 간호사의 숱한 통화 끝에 겨우 감염인 동료가 간병인으로 온 것입니다.

그는 어떻게 이 고통에서 벗어났을까요? 말할 수 있다면 물어보고 싶습니다. 그는 어떻게 이렇게 건강하게 튼실하게 보일까요? 내가 본 그는 더이상 과거의 힘없던 와상환자가 아닙니다.

 

이튿날, 옛 동료였던 그는 나의 간병인으로 나는 여전히 환자로 배에 호스 교체를 위해 대학병원으로 앰뷸런스에 실려갔습니다. 큰 병원에 도착한 우리는 응급실 주변에 방치되었습니다. 앰뷸런스는 우리를 내려두고 가버리고 나는 휠체어 같은 의자에 엉거주춤 뉘여졌습니다.

내 간병인은 씩씩거리면서 왔다갔다합니다. 오전에 응급실에 도착했는데 지금은 잠들고 깨고를 몇 번이나 반복한 시간입니다. 간병인도 나도 아무것도 먹지 못한 채 거의 종일을 응급실 문밖에서 대기하였습니다. 간병인 친구는 내가 방치되었다고 투덜거립니다.

“와상환자를 이렇게 밖에 두어도 되나?”

누나에게 세 번 정도 전화를 해서 지금 환자가 이런 상태라고 알려주는 목소리가 꿈결처럼 들립니다. 잠시 있다 씩씩거리며 에이즈예방협회 대구경북지회의 상담실에 전화하며 하소연합니다. 시간이 흘러 흘러 간병인은 몇몇 분들과 전화를 했습니다. 옆에서 오고 가는 전화 소리를 들으니 내가 빨리 진료를 받을 수 있도록 누나와 협회와 간병인 모두 고생이란 것을 알았습니다.

 

점심시간이 지난 지 벌써 수 시간이 지난 후임에도 나도 간병인도 아무것도 먹지를 못합니다. 내가 여러 검사 때문에 먹지를 못한다고 하니 간병인도 함께 굶습니다.

내가 이렇게 불편하게 방치되어 있다고, 그는 마치 나 자신인 것처럼 불평해주고 여기저기 전화해서 알려주니 어쩌면 그는 자기 속 이야기를 편안하게 말하는 사람인가 봅니다.

그리곤 내 옆에 앉아서 주저리 주저리 말합니다.

 

"이래서 우리 감염인들도 우리 권리를 주장해야 해! 이렇게 가만히 있으니 신경도 안 쓰고 오히려 차별을 하고! 이게 말이 될 이야기야? 와상환자를 몇 시간이고 통로에 내팽겨치고! 말을 해도 듣지도 않고! 다음부터는 에이즈 환자 인권 운동한다면 나도 나서야겠다."

 

내가 듣고 있는지도 모르고 그는 자기의 속 이야기와 나를 통해서 본 감염인의 속상함을 이리 대변하시니 참 멋진 분입니다. 나는 이렇게 말 한마디 못하고 내가 살았는지 죽었는지 가끔은 혼미한 상태로 지내는 나는 그가 부럽습니다.

자신이 굶고 있다고 있는 그대로 말하고 자신이 돌보는 환자가 너무 내팽겨쳐져 있다고 항의하고 또 내 병원비로 돈이 얼마나 나올지 신경도 써줍니다.

 

내가 누워서 나만 바라보는 사이에 그는 이렇게 타인인 나를 생각하고 내 심정까지 생각하느라 씩씩대는 것이 남다릅니다. 그는 건강하고 나는 그로부터 배웁니다. 나는 누군가에게 관심을 가지는 것을 넘어 진정 돕기를 바라는 마음을 내는 그를 나의 동료 간병인이라 부릅니다.

내 옆을 지키는 것이 힘들면 그가 언제 이 일을 그만둘지 모릅니다만 나는 그래도 내 간병인을 기억할 것입니다. 내 형처럼 나는 그를 '나를 위해 준 따스한 사람'으로 기억할 것입니다. 비록 말로 할 수는 없어도! 오늘 내 간병인 같은 사람들 덕분에 우리 감염인의 인권도 좋아지리라 기대해 봅니다.